최면이란?
최면이란 무엇인가?
비록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최면’이라는 이름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실상 최면은 고대로부터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모습과 이름을 달리하며 현재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때로는 ‘샤먼’으로, 때로는 이름 없는 ‘마법’으로, 때로는 ‘메즈머리즘’이나 ‘매혹’으로, 때로는 ‘최면’ 또는 ‘모노이다이즘’으로...
엄밀히 말해 각각의 시대에 다소 다른 컨셉과 다른 의미로 이것을 지칭했고 또 여겨져 왔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한, 두 줄의 짧은 정의로 포괄하여 규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학자들과 최면 교육기관에서는 지금도 최면에 대한 다양한 다른 정의를 언급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정의들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최면가들은 최면이 ‘암시(Suggestion)에 높게 반응하는 상태’ 라는 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또 다른 최면에 대한 정의가 미국 교육부에 의해 정의되어 있는데,
이는 최면이 ‘인간의 비판력(Critical factor : 크리티컬 팩터)을 우회해서 받아들일만한 선택적 사고를 확보한 상태’ 라는 것입니다.
최면은 사람들의 현재의식의 비판력(critical faculty)을 우회(bypass)하여
선택된 사고 ( selective thinking )를 확보하도록 한 마음의 상태 ( a state of mind )이다.
이 정의는 오늘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최면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데이브 엘먼이라는 대가가 사용했던 최면의 정의이기도 하며, 동시에 20세기이후 즉, 2세대 이후의 수많은 최면 전문가들과 단체들이 최면을 설명할 때 즐겨 인용하고 있는 정의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즉, 위의 정의를 간단히 풀어서 설명한다면, 먼저 일반적으로 피험자가 정상적인 각성상태에서 지니고 있는 ‘비판력’이라는 기능을 우회하는 경로를 만든 다음, 암시나 제안 등의 특정한 사고를 받아들이게 되는 마음상태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으로 곧 ‘최면’이라는 것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생각해볼까요? 이전에 슈퍼 영웅들이 망토를 메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SF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판타지 영화를 재미있게 본적이 있나요?
우리는 팬티에 망토를 걸친 주인공이 날아다니고,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난무하는 이러한 영화를 볼 때 크게 따지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영화와 하나가 되어 그것을 즐기면서 보게됩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지칭하고 있는 ‘최면’의 일부를 이미 체험한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영화 속 상황이기에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영화라는 조건이 나의 비판력이 작동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그것을 인정한 채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판력의 우회’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흔히들 ‘최면’이라고 하면, TV나 영화에서 보듯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어 누운 채 뭔가에 홀린 듯 조종당하는 듯한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최면은 눈을 뜨고도 일어날 수 있고 일반적인 각성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앞선 말한 TV나 영화의 장면처럼 눈을 감고 옆에서 유도자가 안내를 하는 행위를 최면용어로 ‘직접최면’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유도자는 도대체 최면을 받는 피험자에게 무엇을 안내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위의 정의에서 본 ‘비판력’을 우회하는 특정한 마음상태를 확립하고, 그러한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수용적인 마음상태에서 내담자가 특정한 제안이나 암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상태를 ‘트랜스’상태라고 부르기도 하며, 주어진 특정한 암시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을 곧 ‘최면’이라 지칭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TV에서 보던 최면장면입니다. 대부분 의식이 없어지거나 잠을 자는 상태가 아닙니다.
물론 피험자가 조종당하는 상태 또한 아니며, 원치 않는 제안이라면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최면에 대한 이미지들은 왜곡되어있고 신비주의로 포장되어져 있습니다.
최면의 마술적인 이미지와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렵고 부정적인 이미지는
헐리우드 영화가 흑백으로 상영되던 시절부터 시작되어 지금껏 재생산되며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면에 걸려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의식이 사라져서 마음을 조종당한다는 등의 생각들은 영화나 소설 등이 만들어낸 오해입니다.
최면경험은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특이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이미 수없이 체험해왔던 자연스런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면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상태로 안내하여 우리의 심리적, 감정적 심지어 그에 수반되는 육체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용하고 강력한 무의식적 치유의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의식을 '머리'에 비유한다면 무의식은 '가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의 문제들이나 이슈들은 무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최면상담이란 이런 깊은 무의식적 변화를 도모하기위해 내면의 잠재의식의 도움으로 부정적인 프로그램에 영향을 줌으로서 이성적인 노력과 의지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감정과 습관 등 무의식 차원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영역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결정권은 최면을 유도하는 유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최면을 받는 내담자에게 있는 것이며 이는 정상적인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진 자연적인 능력입니다.